미술계 소식

제주4·3, 쉽게 열리지 않는 페이지…박정근 사진전

2026.07.27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 8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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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기억, 변주 2025 Pigment print 100×75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찾으려 해도 쉽게 열리지 않는 역사의 페이지가 있다.

웹사이트에서 요청한 문서를 찾을 수 없을 때 뜨는 오류 메시지 ‘404: Page Not Found’. 사진작가 박정근(48)은 이 문장을 제주4·3을 바라보는 하나의 태도로 가져왔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지하 1층 제주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404: Page Not Found'는 제주4·3을 하나의 이미지나 설명으로 복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생존자와 유족의 얼굴, 바다와 나무, 오래된 증언과 사물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며, 쉽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역사 앞에 다시 관람객을 세운다.

박정근은 오랫동안 제주를 작업의 현장으로 삼아 제주4·3과 관련한 사진과 영상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제작한 주요 연작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다.

작가는 사건의 참혹한 순간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폭력이 지나간 뒤에도 한 사람의 생애와 일상에 남아 있는 시간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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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여자 생각 안 나게 하는 담배 2021 Pigment print 145×110c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소한 위로_오태경'은 제주4·3과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간다. 전쟁터에서 죽음의 공포를 마주하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엿을 먹으며 잠시 일상을 붙잡았던 기억은, 이제 노인이 된 오태경의 증언을 통해 거대한 역사가 아닌 한 인간의 생애로 되살아난다.

'희권과 영애 이야기'는 제주4·3의 탄압 속에서 같은 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부부가 된 두 사람의 시간을 기록한다. 이름 없이 역사 속을 통과했던 개인의 삶이 어떻게 한 시대를 견뎌냈는지를 보여준다.

'할머니,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는 제주4·3 생존자들의 초상을 담은 연작이다. 오랜 세월 폭력과 침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이제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의 표정 뒤에는 여전히 말해지지 않은 기억과 상처가 남아 있다.

제주에서 일본 오사카로 이어지는 밀항의 경로도 작품 속에 등장한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고 평온한 바다지만, 생존자들에게 현해탄은 목숨을 걸고 건너야 했던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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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세상에 없는 나무 2023 Pigment print 145×110cm *재판매 및 DB 금지


'세상에 없는 나무'는 제주 곳곳의 나무와 풍경을 말없는 목격자로 바라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마을은, 너무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역사의 흔적을 조용히 드러낸다.

전시 제목인 '404: Page Not Found'는 역사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존재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고, 단번에 이해할 수도 없는 페이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제주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를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와 정부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2000년 특별법 제정 이후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이뤄졌으며, 2025년 제주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역사적 의미가 국제적으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전시는 8월10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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