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새카맣게 탄 영덕 석리마을을 담다…'순환 영원성' 기록하는 사진가
2025.08.26
'생성과 소멸' 기록하는 박정일 사진작가
산불로 전소된 영덕군 석리마을 재건 과정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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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5일 대구 북구 복현어울림센터 서관 3층에서 열린 '복현문화' 사진전에서 박정일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지난 25일 대구 북구 복현어울림센터 서관 3층에서 만난 박정일 사진작가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작가는 대학에서 응집물질물리 이론을 가르치는 물리학 박사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촬영한 계기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과 사회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부산 홍티마을, 경주 한센인 집단마을, 의성 성냥공장 등을 돌며 국내에서 사라져가는 곳의 흔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박 작가가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사진이란 단순한 아카이빙의 목적이 아닌, 모든 순환의 과정을 담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박 작가는 복현어울림센터에서 열고 있는 자신의 사진전에서 산불로 전소됐던 영덕군 석리마을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박 작가에게 지난 3월부터 7월까지의 석리마을 기록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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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박정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2017년 8월9일 당시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의 모습. (사진=박정일 사진작가 제공)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불이 나기 전 처음 방문한 석리마을은 작고 예쁜 집들이 가파른 언덕에 아기자기 모여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특히 새벽 시간 마을 곳곳에서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참 아름다웠던 장소였다. 이랬던 곳이 경북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모두 탔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을이 다시 복구되는 과정을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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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박정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 산불 피해 현장 사진.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산불 직후인 3월 말 대부분 전소된 석리를 다시 찾았다. 집들은 성한 것 하나 없이 새카맣게 타버려 주저앉았다. 곳곳에서는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잔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느 집 앞 난간의 빨래집게에 걸린 녹슨 종은 바람에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나무는 모두 검은 잿더미로 변해있었다. 그야말로 TV에서 보았던 중동의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참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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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박정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 산불 피해 현장 사진.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바닷가 방파제에서 마을을 보았을 때 집 한두 채를 제외하고 거대한 포탄을 맞은 듯 쑥대밭인 모습이었다. 집마다 내려앉은 지붕과 창틀의 유리는 모두 깨져 있었고 난간은 뼈대만 남아 새카맣게 변했다. 마을이 탔다는 표현보다 녹아내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주민들은 모두 대피해 보이지 않았고 길고양이 몇 마리만 이집 저집을 배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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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박정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 사진.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마을의 할아버지 한 분이 화마를 피하지 못해 희생됐다는 말을 듣고 촬영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화재 당일 강한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온 불덩이가 마을을 순식간에 휩쓸었다는 내용을 한 주민에게 들었다. 아마 노인들이 집에서 난간의 경사길을 대피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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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박정일 사진작가가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 산불 피해 현장에서 가져온 녹슨 종.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최근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전소된 주택이 모두 철거되고 그 장소에는 낙석과 토사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방수포가 덮여 있는 모습이었다. 소실된 집 크기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는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현재 마을 뒤편에서는 조립식 건물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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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정재익 기자 = 지난 25일 대구 북구 복현어울림센터 서관 3층에서 열린 '복현문화' 사진전에서 박정일 사진작가가 경북 영덕군 석리마을 산불 피해 모습을 담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사진기록의 가치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신뢰성과 무결성을 담보로 하는 사진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건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의 사진은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섬세한 정보를 전달한다. 또한 의도와는 달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중한 정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석리마을도 다른 형태로 순환할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마을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재건 과정을 계속 기록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