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분홍빛 ‘강령: 영혼의 기술’…오컬트인가, 인식의 실험인가[박현주 아트클럽]

2025.08.26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개막

서울시립미술관~청년예술청 등서 개최

"풍부한 영적 전통과 근대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도시"

‘서울’을 문화 사회, 정치, 역사적 탐구 플랫폼으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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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 요하나 헤드바의 '그 시계는 항상 틀린다'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 중앙홀에 들어서자, 관객을 맞는 것은 거대한 도상의 충격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마녀를 요괴이자 악마를 출산하는 존재로 그려낸 그림(요하나 헤드바 재현작)이 벽면을 채운다. 말의 다리를 가진 여성의 괴기한 신체, 불길처럼 치솟은 머리와 기괴한 표정은 단숨에 시선을 붙든다. 최은주 관장은 “당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기록”이라며, 일부 작품에는 ‘보호자 동반’ 표시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25일 개막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귀신을 불러들이는 전시”다. 제목부터 불안과 금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1층 전시장은 검은 공간으로 갈라져 이어지다 곧 분홍빛으로 전환된다. 벽과 바닥을 감싼 분홍색 벽면에 맞춰 푹신한 카펫까지 같은 색으로 깔려, 강렬한 분홍빛이 전시의 처음과 마지막을 포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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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선정되어 전시를 기획한 3명의 예술감독은 “색은 경험의 매개체다. 색은 언어에 앞서 직접적으로 소통된다. 전시에서 색은 작품을 연결하고 공간을 정의하며 전환을 나타내고 의미를 생성한다. 색은 단순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다”고 설명했다. 2024년, 역대 두 번째 공모를 통해 초대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예술감독팀은 뉴욕에서 작가, 기획자,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안톤 비도클 (Anton Vidokel), 할리 에어스 (Hallie Ayres), 루카스 브라시스키스 (Lukas Brasiskis)다.

분홍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과잉의 의미를 띠어왔기 때문이다. 무속과 불교의 상징으로, 때로는 서울시 캐릭터 해치의 색으로 소비됐으며, 최근에는 ‘주술 정치’ 논란 속에서 일본 종교와 연결되며 정치적 함의를 덧입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분홍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긴장을 호출하는 장치이자, 환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은 신호로도 읽힌다. 전시는 그 분홍빛을 앞세워 관객을 ‘강령’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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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강령(Seance)’은 원래 영매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의식을 뜻한다. 19세기 말 서구의 심령술 붐 속에서 테이블에 둘러앉아 손을 잡고 영을 부르던 세션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감독들은 이 의미를 뒤틀었다. 억압된 지식, 주변부의 전통, 잊힌 역사, 정치적 죽음까지 불러내는 더 넓은 은유로서, 현실과 비현실, 과학과 영성, 합리와 신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인식틀을 여는 통로’로 강령을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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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예술감독 안톤 비도클(Anton Vidokel, 왼쪽 두번째부터), 할리 에어스(Hallie Ayres), 루카스 브라시스키스(Lukas Brasiskis)와 참여 작가 희와 케이, 윤형민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이번 '강령: 영혼의 기술'은 하나의 질문, '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의 발전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서 출발했다."

안톤 비도클 예술감독은 “신세대 예술가들이 샤머니즘, 점성술, 테크노 신비주의 등 기존 지식 체계 바깥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응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맥락도 의식했다. “특정 주술가와 대통령의 관계가 있다는 언론 보도를 면밀히 주시해왔다”는 것이다. 주술 정치의 흔적이 여전히 생생한 이 땅에서 ‘강령’이라는 주제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순수한 것은 없다”며 모든 영적 실천이 치유와 해방의 가능성과 동시에 파괴와 억압의 위험을 안고 있음을 강조했다.

할리 에어스 감독은 “이번 전시는 한국 샤머니즘만을 주목하지 않는다”며, 세계 여러 지역의 영적 실천을 함께 살펴보고 그것이 국가주의적 프로젝트에 오용되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다. 동시에 상업화된 소비를 넘어 또 다른 해석 가능성을 제안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임을 분명히 했다.

루카스 브라시스키스는 ‘영혼의 기술’을 자본주의적·추출주의적 기술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근대성의 전개는 과학과 영적 실천의 틈을 넓혔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틈을 다시 연결하는 시도입니다. 영적 실천을 또 다른 기술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마지막 블랙박스 작업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태국 감독 아노차 수이착폰은 2010년 시위 도중 국가 폭력으로 숨진 청년들을 불러냅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그의 장편영화 리허설 장면입니다. 과거의 장면을 서울로 불러오며 정의와 치유를 모색하는, 강령적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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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 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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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긴장이 발생한다. “오직 이성으로만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이들의 전제는 계몽주의적 틀을 흔들며 예술적 상상력을 확장한다.

하지만 AI까지 발달한 과학문명의 시대에 이는 자칫 “이성을 버리고 미신과 주술에 빠지는 태도”로 비칠 위험이 크다. 한국 사회가 이미 ‘주술 정치’라는 경험을 겪은 만큼, 그 오해는 더욱 예민하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것이다. 예술이 영적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어떻게 지적이고 비판적인 힘을 유지할 수 있는가.

마녀의 괴상한 형상, 불타는 석상, 자동기술 드로잉, 사이버 마녀 선언문… 장면들은 강렬하지만 설명은 부족하다. 기획자들은 다원성과 리서치를 강조했지만, 일반 관객에게 남는 건 난해함의 피로일 수 있다. ‘연구 전시’는 곧 ‘배제의 장치’가 된다.

전시는 총 11개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대미술의 혁명적 실천과 동시대 미술의 계보를 잇는 영적 실험의 역사를 영화,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조명한다. 전시에 초대된 참여 작가는 50명(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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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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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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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 어니스트 A. 브라이언트 3세의 '비행 재킷'(오른쪽)과 '치킨 파티' 영상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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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의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다시 분홍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공간에서 브라이언트 3세의 의례적 조끼와 아노차 수이착폰의 정치적 희생 소환은 분명 울림을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이 뒤따른다. 이 소환은 서울이라는 맥락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맞닿아 있는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은 과연 귀신을 부르는 의식인가, 아니면 우리가 외면해온 지식과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행위인가.

감독들이 말하는 억압된 영적 상상력과 이단적 지식의 복권을 통해, 이번 전시가 위기의 시대에 다른 인식의 방식을 제시하려는 실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 실험이 얼마나 널리 읽히고, 얼마나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술은 종교의 어머니”라는 선언으로 전시 기획을 시작한 예술감독들은 이렇게 말했다. “강령으로 무대화된 이번 전시는 마법을 걸고, 매혹하고, 전달하고, 방해하길 원한다. 익숙한 지각의 논리에서 한 발짝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지각하고, 알고, 존재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포털이 되고자 한다.”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다. 해석도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순수한 색은 없다”는 말처럼, 다양한 해석의 연결고리로 열려 있다.

서울은 지금, '강령'의 무대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청년예술청에서 11월 2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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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 권병준의 작품 '중심에서 피어나는; 잠재태의 황금꽃'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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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25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령: 영혼의 기술' 기자간담회를 갖고 수잔 트라이스터 작가의 '헥센 5.0'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8.25.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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