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젊은모색 2025' 동시대 감각과 철학이 갱신된 현장[박현주 아트클럽]
2025.04.2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23일 개막
39세 이하 20인 발굴…80%가 영상 설치작품
게임 놀이 같지만 깊이 있어…젊은 감각 폭발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로 향하는 글로벌한 시각
로컬의 감각과 글로벌한 언어 동시에 장착
'지금 한국 미술'…"해외 수출 추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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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2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젊은 모색전에 선보인 상희 작가의 게임장 같은 '유랑의 발맞춤'은 관람객이 직접 게임을 하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과천=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놀이 같지만 깊이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장면처럼 선명한 색감의 캐릭터들이 벽면을 가득 메운다. 입구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건 컬렉티브 ‘업체leobchae’의 설치 작업. QR코드와 데이터, 웹3 그래픽이 얽힌 이 현란한 화면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다. 기술과 종교, 자본과 알레고리가 버무려진 동시대적 언어다. 놀이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작품들은 자아 탐구와 사회 비판, 기술 비평이라는 깊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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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2025젊은모색전 입구부터 눈길을 끄는 업체의 멱등설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3일 개막한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는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한 이래 22회를 맞은 장수 신진작가 전시다. 2025년판 ‘젊은 모색’은 특히 세대 교체 이후의 첫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전시는 39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펼치는 감각의 총합이다. 자아 탐구에서 출발해 사회 구조와 기술 비판, 공동체의 의미까지 주제를 확장시킨 작업들은, 개성 있고 생기발랄한 시각 언어로 동시대 감각을 재해석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감각이 오롯이 반영됐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영상과 설치작업'기반으로 작업하지만, 결국은 자아 이야기로 이어진다”며 “매체는 변해도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는 독특한 스토리가 오래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다섯 개 섹션으로 나뉘며, 회화·설치·영상·사운드·게임·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20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 권동현×권세정, 김을지로, 김진희, 다이애나랩, 무니페리, 상희, 송예환, 야광, 업체eobchae, 이은희, 장한나, 정주원, 조한나A, 조한나B 등 20인(개인 및 팀). 이들은 모두 미술관 내부 학예연구사와 외부 전문가의 추천 및 자문을 통해 선정됐다.
전시 입구를 장식한 ‘업체leobchae’의 캐릭터 회화와 디지털 영상은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위키피디아식 구성, 블록체인 구조, 성인 캐릭터의 서사로 포장된 웹3 서사는 디지털 기술과 신앙의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을 시각화했다. “근엄한 것을 유머로 바꾸는 것이 젊은 작가들의 힘”이라는 설명처럼, 게임과 만화, 인터넷 언어를 차용한 전시는 유희와 비판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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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2025젊은모색전에 선보인 김을지로의 복안의 졍령 영상.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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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송예환, 〈인터넷 지도> 동시대의 인터넷 환경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여주며, 제한되고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빅테크 기업의 거대 플랫폼에서 사용자가 어떻게 탐색의 권리를 잃고 수동적인 존재로 변해가는지를 이야기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특히 기술과 자본에 대한 논의는 이번 전시의 주요 흐름이다. 다이애나랩의 ‘티끌’, 상희의 VR형 게임 설치, 김을지로의 생물학적 3D 애니메이션은 기술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때로는 전복시키는지를 탐색한다. 상희 작가는 “게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동과 동행을 주제로 한 감각의 속도 실험”이라며 “관객이 직접 조작자로 개입하는 구조”를 강조했다.
김을지로는 3D 그래픽으로 재현한 생물체를 통해 공생의 불가능성과 인류의 불확실한 미래를 그려낸다. 상희는 관람객이 직접 VR 게임 속에서 타인과 속도를 조율하며 ‘행진’을 경험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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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독특한 분위기의 회화로 차이와 부재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김진희 '무게없는 것들'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들의 시선은 다층적이다. 정주원은 회화에 나무껍질과 사람의 피부를 연결해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탐구했고, 김진희 회화는 집 안이나 발코니, 방 안의 책상 등 사적인 공간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을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초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일상을 통해 사소한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
다이애나랩은 소수자와 함께 만든 설치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드러낸다. 야광(김태리·전인)은 테마파크 ‘다크 라이드’ 형식을 통해 노동자의 공포를 비유했고, 업체leobchae는 데이터와 신앙을 겹친 웹 기반 작업으로 블록체인 사회의 믿음을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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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정주원 '담담한 무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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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조한나A '우리단지'. 작가의 고향인 여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밤바다로 잘 알려진 여수는 사실 거대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품고 있는 곳이며, 이 단지에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와 지역 경제의 축으로서 자본의 무게가 공존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형식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조한나A의 '우리 단지'는 여수의 석유화학단지를 배경으로, 폭발 사고와 기억을 영상과 드로잉으로 풀어냈다. 노동자의 목소리, 가족의 인터뷰, 작가 자신의 성장기까지 섞인 이 작업은 ‘트라우마의 지층’을 가시화하며 감정의 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은희의 '섬섬옥수'도 산업혁명 시기의 직업병 문제가 오늘날의 전자 기술 산업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조명한다. 다양한 역사적 자료와 함께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발화와 행위를 기록한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된다. 각 시대의 최첨단 산업과 기술이 한편으로는 얼마나 모순적이고 취약한지를 질문하며, 오늘날의 기술 세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의 큰 흐름은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로 확장되는' 감각의 여정이다. ‘함께 하기’, ‘기술 너머’ 등 섹션으로 구분된 구성은 각 작가들의 작업이 자기 안의 감정에서 시작해 사회와 동시대의 조건을 포착하려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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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장한나, 〈Being〉. 전국의 해안에서 수집한 500여 개의 뉴락으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 작업이다. 다양한 플라스틱이 변형된 뉴 락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는데, 이는 마치 우주의 빅뱅을 연상시키듯 자본과 인간의 욕망을 은유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젊은 모색 2025’의 작가들 상당수는 국내에서 학부를 마친 뒤 독일, 특히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세대다. 베를린 아트씬의 실험성과 개방성을 경험한 이들은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로 향하는 동시대적 고민을 글로벌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자전적 이야기에서 사회 구조, 기술 비판까지 폭넓게 확장된 주제들은 한국 현대미술이 더 이상 국지적이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들은 로컬의 감각과 글로벌한 언어를 동시에 장착한, 지금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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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젊은모색 강나영 작품.〈E14〉, 2025, 목재, 스티로폼, 금속 파이프, 스프레이, 단채널 영상, 컬러, 2채널 사운드, 310×680×688cm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장 곳곳에선 작가들이 연출한 '게임의 룰'에 따라 관객이 직접 참여하거나 헤드셋을 착용해 서사를 경험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작가들은 애니메이션, 웹툰, 시뮬레이션, 다큐, 웹사이트, 실시간 리더보드 등 친숙한 매체를 활용해 ‘현대의 알레고리’를 제시했다. 이를 두고 김성희 관장은 “생동감 있고 한국적 감성이 살아있는 작업들이라 해외 수출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오는 10월 5일까지 약 6개월간 장기 운영하며, 프리즈 서울(9월) 기간에 맞춰 해외 미술 관계자들의 방문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미술관은 “이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젊은 모색 2025’는 단순한 신진작가전이 아니라, 동시대 감각과 철학이 갱신되는 현장이다. 기술과 자본, 환경, 관계, 자아 등 청년 작가들은 이 모든 것을 ‘지금, 여기’의 언어로 끌어왔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차세대 주역들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첫 비전이, 바로 이 전시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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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젊은모색 참여작가가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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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 전시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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