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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링맨 세화미술관에 바젤리츠 왔다…1500억 규모 사후 첫 개인전

2026.08.13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거꾸로 회화' 거장

한국 전시 추진하다 4월 30일 88세로 별세

19년 만의 韓 미술관 개인전…회화·조각 등 46점, 39점 국내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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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세화미술관과 생전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손을 들어 한국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 인터뷰를 촬영한 지 3주 뒤 바젤리츠는 세상을 떠났다.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 사람들이 제 작업에 놀라거나 흥미를 느낄지 무척 궁금하네요.”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거꾸로 회화’로 잘 알려진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가 한국 관객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20년 만의 한국 개인전을 앞두고 지난 4월 세화미술관이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이 “아시아 문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어찌 보면 그래서 멀면 멀수록 더 좋은 법”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거리를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제 말뜻이 온전히 전달되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 인터뷰 3주 뒤인 4월30일, 바젤리츠는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분주하다. 지난 5월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특별전에서 세계 미술인들을 만난 데 이어, 이제 생전에 준비한 한국 전시로 관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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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프랑스에서의 엘케 II'를 선보이고 있다.  2026.08.12. [email protected]


해머링맨이 있는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에서 12일 개막한 바젤리츠 전시는 그의 약 60년에 걸친 회화와 드로잉, 조각 46점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39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1966년 초기작부터 2026년 신작까지, 세화미술관 소장품 10점을 비롯해 바젤리츠 스튜디오와 타데우스 로팍 등에서 작품을 모았다. 전체 출품작의 보험가액은 약 1500억원이다.

국내 미술관에서 바젤리츠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러시안 페인팅’ 이후 19년 만이다.

작가 사후 열리는 이번 전시는 애초 유작전이 아니었다. 세화미술관은 1년여 전부터 바젤리츠 스튜디오와 작품을 협의했고, 미술관 관계자들이 직접 작가를 찾아 인터뷰까지 촬영했다.

안미희 세화미술관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귀국한 지 약 3주 뒤 작가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살아 계실 때 작품 세계를 보여드리는 전시로 준비했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유작전이자 회고전이 됐다”며 “생전 작가 측과 모든 협의를 마친 상태여서 전시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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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안미희(오른쪽) 세화미술관 관장과 선우지은 전시기획팀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내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8.1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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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 세화미술관에서 바젤리츠의 사후 첫 국내 첫 미술관에 개인전이 열린다. 2026.08.12. [email protected]


◆'거꾸로 화가' 왜 평생 거꾸로 그렸나
바젤리츠는 1969년부터 인물과 풍경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하며 이른바 '거꾸로 그림'을 자신의 독자적인 회화 언어로 구축했다. 흔히 관객에게 그림을 다르게 보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됐지만, 정작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제 의도는 꼭 관람객과 접촉하는 데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저 자신을 위한 어떤 가능성이나 능력을 찾는 데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은 당대의 지배적인 미술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 것인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추상미술 역시 그에게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가진 미술이었다.

그는 회화를 지배해온 규칙과 관습부터 의심했다. 특히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이라는 방향 자체를 “대단히 자의적”이라고 봤다. 이미지를 뒤집음으로써 익숙한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찾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과는 무관하게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이미지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자문함으로써 기존의 규칙과 맹목적인 추종을 깨뜨리려 했죠.”

그는 “현실에 반기를 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반기를 세상에 내보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반기를 드러내려면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생각은 형상이 되어야 했다. 이미지를 뒤집는 것은 그가 찾아낸 방법이었다.

"처음엔 사진을 이용해 이러한 작업을 했습니다. 풍경이나 집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다음 사진을 뒤집어 놓고 그림을 그렸죠. 그러자 엄청난 반향이 일더군요 난생처음 보는 방식의 이미지가 갑자기 떡하니 나타났으니까요 그런 반응이 너무나 놀라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에, 이제 나는 미술사의 전통에서 크게 한 걸음 비켜나고 말았구나'"

하지만 당시 자신의 ‘뒤집힌 이미지’가 다른 화가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대부분 그저 장난으로 치부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 역시 기존 질서와 순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본명은 한스 게오르그 브루노 케른이다. 1938년 독일 작센 지방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분단을 경험했다. 동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서베를린으로 옮겼고, 1961년 고향의 이름을 따 게오르그 바젤리츠로 개명했다.

그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사실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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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빨강, 주황, 노랑의 반대'를선보이고 있다.  2026.08.12. [email protected]



독일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바젤리츠는 20세기 후반 독일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한 핵심적인 작가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전쟁의 상흔과 독일 분단의 역사와 기억을 파편화된 신체와 뒤집힌 형상이라는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냈다.

2층 전시장 초입에서 눈길을 끄는 절편 회화(Frakturbilder, Fracture Paintings)의 대표작 '나뉜 소 두 마리 I'(1966)부터 그의 회화에서 영웅과 독수리 같은 국가적 상징이 온전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위 아래가 나뉜 '소 두 마리 I'는 캔버스를 분할하고 대상을 절단해 익숙한 시각 질서를 전복한 작품이다. 나치가 악용한 목가적 이미지를 해체하며 전쟁의 폭력을 은유하고, 1960년대 ‘영웅’ 연작은 승리자가 아니라 황폐한 풍경에 홀로 남겨진 상처 입은 남성을 의미한다. 독일을 상징하는 위엄 있는 독수리 역시 날아오르는 대신 거꾸로 추락하듯 화면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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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에 선보인 독수리를 거꾸로 그린 '나중에 구두가 발견되었다'(왼쪽) 와 '진입금지'를 선보이고 있다. 2026.08.12. [email protected]


독일의 분단을 직접 경험한 세대인 그는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을 바라보며 전쟁과 예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바젤리츠는 “제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무렵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며 “공산 체제에서 자란 나로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동포끼리 침략하고 정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면에서 세상은 여태껏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도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동시대 회화가 유럽 회화와 비교되고, 서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전쟁과 정치적 격변이 자신의 작업에 중요한 동력이 됐다고 돌아보면서도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 끔찍한 정치 체제를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는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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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도약(리믹스)'를 선보이고 있다. 2026.08.1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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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은 12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회고전에 선보인 골드 페인팅 연작.  2026.08.1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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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세화미술관 바젤리츠 전시에 선보인 금빛 조각 '키르히너의 손'. *재판매 및 DB 금지


◆마지막에 나타난 금빛
이번 전시에서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뀌는 곳은 마지막 공간이다.

3층 전시장 중앙에는 해골을 연상시키는 검은 조각도 놓였다. 아프리카 조각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말년에 반복했던 해골 이미지와 늙어가는 육체가 겹쳐진다.

검은 통로에는 일부러 작품을 걸지 않았다. 빈 공간을 지나 독수리 연작을 거치면 어둠 속에서 황금빛 ‘골드 페인팅’이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추모의 공간 같은 숭고함이 감돈다.

그러나 이를 죽음을 예감한 노년의 작업으로만 읽기는 어렵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검은 공간의 추모 분위기가 강해지자 바젤리츠 스튜디오 측에서도 “너무 죽음을 상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미술관은 무게를 덜어내면서도 생애 마지막 작품을 만나는 공간의 긴장은 남겼다.

바젤리츠는 마지막까지 새로운 재료와 색, 회화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신체적 한계 앞에서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그는 손이 닿지 않는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작업을 이어갔다. 화면에는 물감뿐 아니라 휠체어 바퀴와 보행 보조기의 자국까지 남았다. 늙어가는 몸의 흔적 자체가 회화의 일부가 된 셈이다.

말년에 붙잡은 금색 역시 생의 종착점을 알리는 색이라기보다 기존의 자기 회화에서 다시 한번 벗어나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그는 “검은색은 미학적 의도의 시작이고, 금색은 그 과정의 끝”이라고 말했다. 금색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선택은 아니었다.

영상 인터뷰에서 금색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에게도 대담하고 ‘뻔뻔한’ 선택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작업을 거듭하면서 금색이 최근 몇 년간 자신의 회화에서 “사실상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년에 이른 거장은 역설적으로 가장 화려한 금빛 위에 나이 들어가는 인간의 연약함과 삶의 무게를 담담히 드러냈다. 화면의 빈 공간도 커졌다. 금빛 화면에 그려진 것은 자신과 평생의 동반자 엘케의 늙은 몸이다. 인물들은 여전히 거꾸로 매달려 있지만 젊은 시절의 육중한 신체는 사라지고 가느다란 선으로 간신히 형체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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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리츠가 생전 한국 전시를 준비하며 인터뷰한 영상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 영상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의 과거는 미술사이며 내가 살아온 시간은 한 예술가의 시간이다. 이제 나는 매우 나이가 들었고 넓은 조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전략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다. 이제는 예술이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40년 전보다 훨씬 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젊은 바젤리츠에게 회화가 교란하고 뒤집어야 할 대상이었다면 노년의 바젤리츠에게 회화는 더 이상 전략으로 통제할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자신이 예술을 움직이는 데서 예술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한 거장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60여 년 동안 자신이 만든 회화의 규칙마저 다시 의심해온 화가가 끝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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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세화미술관에서 독일 신표현주의 대표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전시가 국내에서 19년 만에 열린다.2026.08.1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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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이 전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슈퍼 얼리버드 티켓은 판매 2분 만에 매진됐고, 1차 얼리버드 티켓도 일주일 만에 모두 소진됐다. 세화미술관 개관 이래 가장 높은 사전 예매율이다.

바젤리츠전을 계기로 미술관 공간도 손봤다. 사무실을 전시장으로 바꾼 2층 공간은 천장을 노출해 층고를 높였고, 굿즈숍은 초록 나무가 액자 그림처럼 보이는 창가로 옮겼다. 1층 안내데스크도 정비해 건물 안에서 미술관의 존재감을 높였다.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세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내년 개관 1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방향도 모색한다.

안미희 관장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지만 국내에서 많이 보여지지 않은 작가들의 전시를 1년에 한 번 정도는 기획할 것”이라며 “바젤리츠를 시작했으니 이 정도 수준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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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세화미술관 입구에 서 있는 바젤리츠의 청동조각 '친구' *재판매 및 DB 금지


바젤리츠 전시는 미술관 밖 광화문 거리까지 이어진다. 태광그룹 빌딩 입구에서 또 한 명의 바젤리츠가 기다린다.

이 건물의 상징인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맨’이 서 있는 입구 오른쪽에는 검은 인물이 길쭉한 두 다리로 서 있다. 바젤리츠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만든 청동 조각 ‘친구(Friend)’다.

1965년 스물일곱 살의 자신을 2024년 여든여섯의 바젤리츠가 다시 불러냈다. 자신의 과거를 다시 그렸던 ‘리믹스’ 연작처럼, 노년의 작가가 젊은 자신과 다시 마주한 작품이다. 낯선 검은 인물 앞에서 오가는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작가는 떠났지만 광화문 거리에서는 두 다리가 짱짱한 젊은 바젤리츠와 마주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전시 기간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9월1일에는 바젤리츠의 유족 다니엘 블라우와 미술사학자 윤희경이 작가의 작업 세계와 미술사적 의미를 주제로 대담한다. 오디오가이드는 가수 빈지노가 맡았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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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의 랜드마크 태광그룹 흥국생명 빌딩 앞 조형물 ‘해머링 맨’. 이 건물 2~3층에 세화미술관에 자리하고 있다.  태광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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