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분홍 심장, 푸른 동물…고상우의 공존 미학 [박현주 아트클럽]
2026.04.30
사비나미술관서 개인전 5월 2일 개막
국내 1호 거점동물원 청주동물원과 협력
실제 보호 동물 서사 담은 신작 최초 공개
분열된 세상, 가장 약한 존재의 곁에 서는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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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derlessFaces국경없는얼굴들, 150x200cm, 울트라크롬HDR프린트,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푸른 화면 속, 동물들은 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고통을 외면해 왔는가.
상처 입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중심 사회의 폭력을 되묻는 전시가 열린다
사비나미술관에서 5월 2일 개막하는 고상우 기획전 ‘스틸 브리딩: 아직 숨 쉬고 있다(Still Breathing)’는 인간의 욕망과 시스템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미술로 상처 입은 동물을 위로하는 전시 제목 ‘스틸 브리딩’은 단순한 상태의 묘사가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이 문장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이자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숨을 이어가는 존재들을 통해 이번 전시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생명들을 외면해 왔으며, 그 침묵에 어떤 방식으로 가담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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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pire황제, 120x120cm, 울트라크롬HDR프린트,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
◆푸른색 네거티브 기법으로 드러낸 생명의 서사
사진작가이자 현대미술가인 고상우(48)는 ‘인간과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종들과의 공존’이라는 세계관을 예술로 실천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과 퍼포먼스를 전공한 그는 사진, 퍼포먼스, 회화, 디지털 드로잉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일관된 메시지를 구축해왔다.
그의 시그니처인 네거티브 필름 효과를 활용한 ‘푸른색 반전 기법’을 통해 현실을 낯설게 뒤집는다.
이 기법은 199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 자신의 피부색이 파란색으로 반전되어 보이는 경험에서 출발해 2001년 자화상 ‘꽃을 든 남자’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멸종위기 동물 시리즈로 확장되며 작가를 대표하는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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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우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고상우의 ‘블루’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이민자로 살았던 어린 시절, 언어와 문화, 피부색의 차이를 체감하며 그는 늘 ‘바깥의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경험은 약자를 향한 시선으로 이어졌고, 인간을 향하던 관심은 동물로 확장됐다.
작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존재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서커스단에서 구조된 동물을 본 경험이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동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보호받았어야 할 존재들이다.
2022년 발표한 ‘운명’은 이러한 시선이 응축된 작업이다. 한국전쟁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사라진 생명의 흔적을 추적해 복원한 이 작품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재현을 넘어 존재에 대한 애도이자 기억의 호출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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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stSenses사라진감각, 150x150cm, 울트라크롬HDR프린트,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
푸른 화면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분홍빛 하트는 고상우 작업의 핵심 장치다. 차갑고 깊은 색감 속에 놓인 작은 하트는 강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 하트는 장식이 아니다. 상처 입은 존재의 중심에 남아 있는 감정,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온기를 상징한다. 차가운 세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 끝내 꺼지지 않는 어떤 마음에 가깝다.
또한 그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동물들의 눈이다. 화면 속 동물들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다.
가로·세로 150㎝에 달하는 대형 화면 속 눈빛은 쉽게 피할 수 없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질문이 된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혹은 누구에게 바라보이고 있는가.
이 응시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이다. 동물 역시 감각하고 기억하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존엄과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환기한다.
인간 중심적 위계에 균열을 내는 이 장치는 강렬하다. 동물은 더 이상 열등한 종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호출된다.
이번 전시는 거시적 담론에서 나아가 개별 생명의 구체적인 서사에 집중한다. 화장품 실험에 사용되는 토끼 ‘랄프’, 탈출을 시도했던 얼룩말 ‘세로’, 밀렵을 피해 뿔을 제거당한 코뿔소 ‘디혼’ 등 상처 입은 존재들은 더 이상 사례가 아닌 하나의 얼굴을 가진 생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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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a하나, 150x200cm, 울트라크롬HDR프린트,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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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동물원에서 보호중인 하나 *재판매 및 DB 금지 |
◆청주동물원 협업…현실과 맞닿은 예술
청주동물원과의 협업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실제 보호와 치료를 받고 있는 동물의 삶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예술이 현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작 ‘하나(하나·Hana)’는 선천적 부리 기형으로 구조된 독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주동물원에서 날카로운 눈빛의 ‘하나’와 마주한 순간, 맹금류의 본능 깊은 곳에 자리한 광활한 하늘을 향한 갈망을 읽어냈다.
그 감각은 작품의 조형 언어로 번역된다. 푸른 화면 속에서 분홍빛 하트를 품은 노란 눈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든다.
상처 입고 보호 아래 놓인 조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비상의 본능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하늘을 향하는 존재의 모습은 보호와 존엄, 회복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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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rderline경계선, 150x200cm, 울트라크롬HDR프린트,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
◆경계 위에서 드러난 공존의 가능성
고상우는 세계자연기금(WWF)과 협력해 백령도와 가로림만 일대에서 점박이물범을 기록해왔다.
북방한계선(NLL)이라는 군사적 긴장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물범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경계의 인위성을 드러낸다.
대표작 ‘국경 없는 얼굴들 2026’, ‘경계선 2026’은 분단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지속되는 생명과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긴장과 대립의 상징인 공간이, 물범에게는 오히려 위협이 적고 먹이가 풍부한 생존의 공간이 된다. 이 역설은 우리가 만든 경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이 전시는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응답을 요청한다. 가장 약한 존재의 곁에 서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던 고통을 인식하는 일이다.
‘스틸 브리딩’은 애도의 문장이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는 신호다.
예술은 보게 하고, 느끼게 하고, 결국 행동하게 만든다.
그 힘은 지금, 우리의 선택을 향하고 있다. 전시는 사비나미술관 2층과 5층에서 5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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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비나미술관 고상우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