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정치가 문화를 망친다”…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의 쓴소리[문화人터뷰]
2026.10.21
잦은 관장 교체·학예사 순환보직…“정치 바람에 전문성 약화”
“관장 권위에 이견 내기 어려워”…박물관 검증 구조 비판
“BTS는 K컬처 넓혔지만 연구의 깊이는 부족”
“유홍준 개인 문제 넘어 박물관 전체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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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뉴시스] 이병희 기자 =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 관장. 뉴시스DB. 2024.04.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정치가 진짜 문화예술을 다 조지는 거예요.”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이 한국 박물관의 인사 구조와 전문성 약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사의 표명으로 이어진 '친일파 글씨' 논란을 계기로 박물관 운영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전 관장은 1988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개관 이후 2023년까지 30여 년간 한국 서예의 역사와 가치를 조명해 온 전문 큐레이터다. '한국서예사 특별전 시리즈'를 35회에 걸쳐 기획했고,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 위창 오세창 등 서예 거장들의 전시를 선보였다.
서예진흥법 제정과 서예박물관 리모델링에도 참여했으며, 2024년 경기도박물관장에 취임해 박물관 운영을 맡았다. 서예 전문가로 유물을 연구하고 박물관장으로 조직까지 운영해 본 그의 비판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번 논란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한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로 확인되면서 불거졌다.
해당 유묵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며, 그가 직접 전시 출품을 추천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검증 부실 논란이 커졌다.
유 관장은 지난 9월 10일 전시품 검증 미흡에 대해 사과했다.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사과한 데 이어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관장의 사의 표명만으로 박물관의 검증 체계에 대한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전 관장은 21일 뉴시스에 유 관장이 서예에 대한 자신의 전문성과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한 점을 문제 삼았다. 아무리 오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라도 자신의 판단을 검증받는 절차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관장의 권위 앞에서 학예사들이 독립적인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를 비판했다. 유물의 진위와 가치에 관한 판단은 관장 개인의 확신이 아니라 학예사들의 조사와 연구, 검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관장의 판단이 잘못됐을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전문적 검증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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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6.04.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20~30년 파고들어야 전문가”…잦은 인사이동에 전문성 단절
그가 지적한 또 다른 문제는 학예사들의 잦은 인사이동과 과중한 업무다.
이 전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립박물관의 순환보직이 학예사들의 전문성 축적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국박도 그 안에서 2년, 3년이 멀다 하고 인사이동이 전국에 13개 되는 박물관으로 왔다 갔다 한 서너 번만 하면 사실 학예사들 바보 다 돼요.”
그는 유물 감정과 연구를 중증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의의 역할에 비유했다. 오랜 임상 경험을 쌓은 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듯 학예사 역시 특정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로 20년, 30년을 죽자 살자 파고들어야지 전문가라고 하지.”
유물 감정과 연구에 필요한 안목은 오랜 시간 특정 분야를 연구하고 작품을 직접 살펴야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전시 자체가, 유물 감정 자체가 임상 실험이고 그걸 평생 해야지 바로바로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하는데, 이제 그 능력을 완전히 원천적으로 말살해버린 거예요.”
학예사들이 유물 감정과 연구보다 행정 업무에 매달리는 현실도 비판했다.
“학예사들은 병원의 원무과 직원처럼 서류 정리만 해요.”
그는 학예사가 유물을 직접 조사하고 판단하는 대신 외부 전문가의 감정과 평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박물관 자체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예사가 직접 진짜 가짜다, 가치가 얼마다, 성격이 어떻다는 거를 안 하고 못 하죠.”
◆“논문이 도록 되고 전시가 돼야”…연구보다 앞서는 전시
이 전 관장은 박물관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연구와 전시의 순서다. 유물을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해 학술 논문을 쓰고, 그 성과를 도록과 전시로 연결하는 것이 박물관의 기본 역할이라는 것이다.
“1년에 전시 한 번 해도 학술 논문을 써놓고 그걸 전시로, 도록으로 만들고 전시로 연결시켜야 되는 게 상식인데 대한민국 박물관에서 그 상식이 허물어진 지 오래됐어요.”
그러나 전시 일정과 행정 업무에 쫓기는 현실에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시가 열렸는데도 도록이 나오지 않는 사례를 언급하며 박물관의 연구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 전시회도 도록 안 나오고 전시한 데 많고, 오히려 전시 전에 도록 내라 하면 내가 일이 많은데 논문 쓸 시간도 없다 하고 학예사들이 화를 내죠.”
관람객 수와 전시 실적이 강조되는 분위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전시의 규모와 흥행보다 중요한 것은 유물과 작품에 대한 연구 성과가 얼마나 축적됐는지라는 주장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연간 관람객 650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수 3위에 올랐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바티칸박물관에 이은 성적이다.
이 전 관장은 이 같은 외형적 성장에 걸맞은 학술적 성과도 축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자리에서 진짜 깊이 있는 연구해서 3년, 4년 연구도록 만들어 놓고 전시회 하나 딱 내는 그런 때야말로 진짜 K컬처가 3.0 시대로 도약이 되고 4만 달러에 걸맞은 문화강국이 되는 거지.”
그는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무대에서 K컬처의 저변을 넓힌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한국 문화예술의 학술적 토대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BTS는 표면적으로 넓힌 거는 우리가 다 인정하고 박수 치는데, 깊이로 들어가면 아직 우리는 일제강점기도 못 들어갔어요.”
그는 외부 전문가의 유물 감정 결과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는 구조도 문제로 꼽았다. 외부 전문가의 평가를 받더라도 박물관 내부에서 그 결과를 검토하고 판단할 수 있는 학예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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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전시품의 검증 미흡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전시한 작품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유묵은 조사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로 확인됐다. 2026.09.10. [email protected] |
◆“2년도 임기 못 채워”…박물관장 인사에 정치권 영향력 비판
이 전 관장은 박물관 운영에 미치는 정치권의 영향력도 비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차관급 자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박물관의 운영을 책임지는 동시에 유물의 보존과 연구, 전시 정책을 이끄는 자리다.
이 전 관장은 최근 수년 사이 국립박물관장들이 교체된 상황을 거론하며 박물관이 정치적 변화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2년도 임기를 못 채우는 거예요. 너무 정치 바람이 부는 겁니다.
기관장이 자주 교체되면 장기적인 연구와 전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정치권에만 돌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예술이 이끌고 나가야 되는 데까지 그 방안을 갖고 얘기를 하자. 안 그러면 맨날 욕하다가 평생 죽을 수도 없잖아요.”
박물관과 문화예술계 스스로 정치적 영향력을 넘어설 수 있는 운영 원칙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박은 고미술, 국현은 현대미술”…행정의 경계 넘어야
이 전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미술,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을 담당하는 기관별 구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행정적으로 기관을 나눌 수는 있지만, 미술의 역사와 연구까지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별개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관행이 한국 미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행정은 우리가 구역이 있지만 문화는 그걸 넘나드는 게 문화다, 예술이다.”
그는 서예 전문가라는 이유로 현대미술과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현실도 언급했다. 서예를 전통미술의 영역에만 가둬두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미술을 모르면 현대미술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고암 이응로의 문자추상과 군상 작업을 사례로 들었다. 붓글씨에서 출발한 조형언어가 현대미술의 추상과 인간 군상으로 확장되는 과정 자체가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이 전 관장은 박물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도 기관 간 경계를 허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 조직은 나뉘어 있어도 연구와 전시는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 서로 연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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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3.12.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
◆“유홍준 개인 문제 넘어 박물관 전체 돌아봐야”
유 관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였고,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을 다룬 '완당평전'을 펴낸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 전 관장 역시 유 관장의 컬렉션과 기증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 관장의 공적과 서예에 대한 전문성이 박물관 내부의 연구와 검증 절차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번 논란을 특정 인물의 책임을 묻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유 관장님 개인의 문제는 문제더라도 우리 박물관 전부가 좀 원점에서 한번 생각하는 그런 기회가 돼야 됩니다.”
그는 박물관의 운영과 인사, 연구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거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지, 맨날 욕하고 그다음 날 가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