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유찰됐던 ‘붉은 옷 여인’, 30주기 첫 얼굴로…‘색채의 화가’ 임직순
2026.10.06
서울미술관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7일 개막
꽃·여인 넘어 풍경까지…유화 등 작품·자료 100여점
마지막까지 붓 놓지 않아…미완성 유작 ‘팜트리’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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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경.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미술관 입구에서 관객을 바라본다.
짙은 청록빛 화면 속 강렬한 붉은색. 한쪽 팔을 의자에 걸친 여인은 화려한 옷과 달리 무겁고 진지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꽃과 여인의 화가’ 임직순(1921~1996)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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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입구.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20여 년 전 이 그림은 미술시장에서 주인을 찾지 못했다. 서울옥션 경매에 나왔지만 유찰됐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이 당시 1800만원에 사들였다.
한때 미술시장에서 잊혀가던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20여 년이 흐른 지금 미술관의 첫 얼굴이 됐다.
30년 전 세상을 떠난 임직순이 다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이 7일 개막하는 임직순 작고 30주기 특별전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를 통해서다.
임직순은 한국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다. 일본에서 유화를 공부하고 국전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195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이후 추천·초대작가로 활동했다. 196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광주에 정착하면서 남도의 자연을 본격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색채로 여인과 꽃을 그려 ‘색채의 화가’로 불렸다. 국전의 중심에 섰고 교육자로 후학도 길렀다. 생애 약 25차례 개인전을 열고 집필과 신문 연재, 표지화 작업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지 30년. 세대가 바뀌면서 그의 이름도 대중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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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전경.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는 그 오래된 이름을 다시 불러낸다.
전시장에는 가을처럼 짙은 색들이 펼쳐진다. 붉은 옷의 여인과 노란 꽃, 남도의 산과 바다, 항구와 나무가 이어진다.
오래된 그림인데 온기가 있다. 화려한 색채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그림을 대하는 한 화가의 진지함이다.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싶다.”
임직순이 생전에 남긴 말이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됐다.
그는 꽃과 여인, 산과 바다처럼 익숙한 대상을 그렸다. 하지만 겉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데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 광주에 정착하면서 무등산과 남도의 풍경으로 시선을 넓혔다. 1970년대 파리에서 인상주의를 접한 뒤에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탐구했다. 대상의 재현보다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과 본질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1980년대에는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선, 두터운 마티에르가 화면을 채웠다. 1988년부터 신장병으로 투병한 말년에는 형태와 설명적인 요소를 더욱 덜어내고 선과 색, 힘찬 붓질에 집중했다.
그에게 그림은 거창한 선언이기 전에 매일 하는 일이었다.
가장 왕성하게 작업했던 1980년대에는 오전이면 자택 화실에 여성 모델을 앉혀 인물화를 그렸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아내가 준비한 꽃을 화병이나 항아리에 꽂아 정물화를 그렸다.
전시장에는 그림 속 여인이 실제 앉았던 라탄 안락의자가 나왔다. 아내가 꽃을 꽂아주던 화병도 있다. 물감이 굳어버린 팔레트와 붓, 이젤도 남아 있다.
완성된 그림 옆에 놓인 낡은 물건들은 ‘대가’라는 이름보다 매일 그림을 그렸던 한 사람의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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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전경.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꽃과 여인의 화가’라는 수식어에 가려졌던 풍경화도 대거 나왔다.
여행은 임직순에게 거의 유일한 취미이자 사생의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어 그대로 옮기기보다 산과 바다, 항구를 직접 바라보며 현장에서 받은 인상을 스케치와 수채화로 기록했다. 화실로 돌아와서는 이를 다시 유화로 발전시켰다.
1986년 울릉도와 1991년 소래포구에서 본 배도 여러 각도에서 반복해서 그렸다. 눈앞의 풍경을 얼마나 닮게 그리느냐보다 자신이 무엇을 느꼈고 그것을 어떤 색과 붓질로 바꿀 것인가가 중요했다.
하나의 장면을 향한 집요함은 두 그루의 나무에서도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6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서로 맞닿아 선 두 그루의 나무를 거듭 그렸다. 드로잉과 수채화, 유화로 매체를 바꾸고 구도와 색을 달리했다. 처음에는 나무 뒤에 구름 등 배경을 그렸지만 어느 순간 노란 물감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배경을 지우고 나무만 남겼다.
한 화면을 오래 바라보고,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림에 대한 진심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1996년 7월 임직순은 세상을 떠났다. 약 10년간 신장병으로 투병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심해진 심부전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를 치른 뒤 가족들이 화실로 돌아왔을 때 이젤에는 한 점의 미완성 그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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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트리>(미완성작), 1996, 캔버스에 유채, 73 x 90.5 cm, 개인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고 1년 전 미국에서 마주한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팜트리’였다.
붓질은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 미완성 유작이 생전 사용했던 이젤과 함께 처음 공개된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작업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지만 오히려 한 화가의 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평생 그림을 그렸다. 오전에는 모델을 앞에 앉혀 여인을 그리고, 오후에는 꽃을 꽂아 정물을 그렸다. 여행을 가서도 연필과 펜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임직순 작고 30주기를 기념해 마련된 전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유화 약 80점을 중심으로 드로잉과 수채화, 판화 등을 선보인다. 생전 사용한 이젤과 팔레트, 붓과 물감, 가구와 생활용품 등 유품 30여 점도 공개했다.
남겨진 1000여 점의 스케치 가운데 주요 작품을 골라 완성작과 함께 선보여 하나의 장면이 어떻게 한 점의 회화가 되는지도 보여준다.
오래된 그림은 액자까지 볼거리다. 임직순 특유의 짙은 색채를 감싼 묵직하고 화려한 금빛 장식의 액자가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정취를 더한다. 당시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의 작품에는 값비싼 액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림을 둘러싼 틀에서도 당대 임직순의 인기와 미술시장의 취향이 읽힌다.
전시는 2027년 2월1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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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전경.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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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전경.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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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울미술관 임직순 특별전 전시 전경. 2026.10.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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