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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묵은 화첩까지 활짝…겸재 정선 216점, 대구에 펼쳤다

2026.09.15

탄신 350주년…역대 최대 규모 정선전 16일 개막

대구간송미술관, '경교명승첩'·'해악전신첩' 회화 전면 최초 공개

금강산부터 대구까지…청년에서 80대까지 '정선의 눈'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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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간송미술관 겸재정선 특별전 전경. [email protected] 2026.09.15. *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 216점이 한자리에 펼쳐졌다.

금강산과 한양의 명승부터 고사인물화, 화조영모화까지. 청년 정선에서 80대 노년의 정선까지 이어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전면 공개되지 않았던 '경교명승첩'과 '해악전신첩'의 회화도 모두 펼쳤다.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대구간송미술관이 16일부터 특별전 '겸재 정선 -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를 개최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했다. 두 재단 소장품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총 216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정선 전시다.

현재 남아 있는 정선의 작품이 정확히 몇 점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도록을 모두 살펴봤지만 같은 작품인지 불분명하거나 과거 도록에 수록된 뒤 현재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작품도 있다”며 “정선 작품으로 전해지지만 진작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현존 작품 수를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술계 일각의 '600점가량' 추산에 대해서도 “도록을 전부 조사해 정리했을 때 600점은 아니었다”고 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4개 전시실을 새롭게 단장했다. 전통회화 전시에서는 낯선 핑크와 퍼플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비스듬히 세운 벽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선, 영상을 활용해 공간에 변화를 줬다. 216점을 펼쳤지만 빽빽하다는 느낌이 없다. 작품 사이에 여백을 두어 정선의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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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간송미술관 겸재정선 특별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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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간송미술관 겸재 정선 특별전 전시 전경. 2026.09.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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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5일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관람객이 정선의 '경교명승첩'을 살펴보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한 번도 다 펼치지 못했던 화첩…“미술관으로서는 모험”
이번 전시의 백미는 '경교명승첩'과 '해악전신첩'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전면 공개되지 않았던 '경교명승첩'과 '해악전신첩'의 회화도 모두 펼쳤다.

왜 지금까지 전면 공개하기 어려웠을까.

허 총괄은 15일 언론공개회에서 “전면을 공개해 보여드릴 만한 장소와 전시할 수 있는 조건이 많지 않았고 작품을 보호하는 측면도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통해 전면을 공개한다는 것은 미술관 입장에서는 굉장한 모험이기도 하다”며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화수분처럼 계속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관람객에게 꾸준히 좋은 작품을 보여주려면 전시 횟수를 조절하고 보존도 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물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 자체에도 의미를 뒀다.

허 총괄은 “연구서나 도록을 통해 모두 볼 수는 있지만 실물을 봤을 때 받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며 “연구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이고 관람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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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경교명승첩》 〈독서여가〉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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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경교명승첩》 〈촉재제시〉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호암이 '정선의 회화' 봤다면 대구는 '정선이라는 사람'
이번 전시는 지난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정선전과 애초부터 1·2부로 기획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같은 전시의 반복은 아니다.

지난해 호암 전시에서는 정선의 회화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중심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와 후대 작가들까지 함께 보여줬다.

대구에서는 주변을 덜어냈다. 정선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허 총괄은 “이번에는 인물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일부를 과감하게 생략했다”며 “온전히 정선에 집중해 216점을 전시한다”고 말했다.

화첩을 보여주는 방식도 다르다. 호암에서는 전시 주제에 따라 '경교명승첩'의 작품을 나눠 배치했다면 이번에는 한자리에서 펼쳐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전통회화를 엄숙하게 모셔두기보다 관객이 편하게 들어가 오래 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허 총괄은 “대구에서는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획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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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여산초당〉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에서 만나는 정선의 '대구'
대구에서 열리는 정선전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정선은 60대 후반 영남으로 내려와 하양과 청하에서 현감을 지냈다. 이 시기에는 하양에서 멀리 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남겼다.

300년 전 정선이 바라본 대구를 오늘의 대구에서 다시 보는 셈이다.

전시는 '진경산수의 대가'라는 이름표 뒤에 가려졌던 정선도 끄집어낸다.

금강산과 한양의 명승뿐 아니라 고사인물화와 화조영모화까지 펼쳤다. 중국의 고사를 그리면서도 풍경과 인물에는 조선의 모습을 집어넣었다. 작은 동물과 일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도 담겼다.

장수를 기원하고 축하하기 위해 제작한 선물용 그림도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장수를 상징하는 도상을 화면에 담았다.

작은 화면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세밀한 묘사를 보여주는가 하면 거대한 산수에서는 장대한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허 총괄은 정선의 이 같은 폭넓은 표현력을 설명하며 “겸재 정선은 '그림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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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금강전도〉 ⓒ개인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청년의 금강산과 노년의 금강산
전시의 절정은 금강산이다.

국보 '금강전도'와 보물 '풍악내산총람'이 나란히 걸렸다. 먹으로 압도하는 '금강전도'와 색으로 물든 가을 금강산 '풍악내산총람'을 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다.

다만 정선의 또 다른 대표작인 국보 '인왕제색도'는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없다. 2021년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으로, 현재 이건희 컬렉션 국외 순회전에 나가 있다.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에 이어 오는 10월 영국박물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정선은 평생 금강산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년부터 60대, 70대, 80대까지 같은 명승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할 수 있다. 같은 삼일포를 그린 작품도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날카롭고 세밀했다. 나이가 들수록 붓은 부드러워지고 형태는 과감하게 생략된다. 80대에 이르면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이 체득한 필법으로 핵심을 잡아낸다.

더 오래 본 화가가 더 적게 그리기 시작한 셈이다.

216점이라는 숫자가 힘을 발휘하는 대목이다. 대표작 몇 점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한 화가의 변화를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다.

허 총괄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정선이라는 인물”이라며 “350년 전에 태어난 정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를 상상하면서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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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정선의 화조도 속 동물과 식물이 전시장 벽면 영상에서 움직인다. 2026.09.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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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화훼영모화첩》 〈추일한묘〉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은 “K컬처에 대한 관심으로 대중문화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이 주목받는 지금, 고유의 방식과 철학으로 우리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겸재 정선의 작품들은 오늘날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 문화의 독자성과 보편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호암미술관 측도 “이번 전시는 겸재 정선의 예술세계와 인간 겸재의 삶을 한눈에 조망할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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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대구간송미술관 겸재 정선 특별전 전경. [email protected] 2026.09.15.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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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기자] 겸재 정선 탄신 350주년을 맞아 마련된 특별전 '겸재 정선' 전시장 전경. 2026.09.1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에서 지난해 호암의 정선을 봤더라도 대구에서 다시 볼 이유는 충분하다. 216점이라는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정선 한 사람의 생애와 눈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 전시의 밀도다.

350년 전 조선의 산천을 자기만의 눈으로 다시 그렸던 정선. 21세기에 다시 만난 그의 그림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풍경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전시는 12월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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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청풍계〉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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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전경 ⓒ 대구간송미술관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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