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엄마가 되고 난 뒤, 세계는 달라졌다…고아빈 ‘아이보개 BLUE(S)’

2025.12.02

안양시 아트 포 랩에서 6~14일 개인전

경기문화재단 ‘생애 첫 지원’ 선정 전시

associate_pic
아이보개 BLUE(S) #2, 2023 손지 5배접에 분채와 석채, 비단 콜라주, 45×45c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학과, 미술학 박사를 마치고 출산과 육아의 시간 끝에서 다시 화가로 선 고아빈(42)이 ‘아이보개 BLUE(S)’로 새로운 경계의 문을 연다.

전통 한국 채색화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작가가 오랜 공백 이후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이 오는 6~14일 안양시 아트 포 랩에서 열린다.

회화·드로잉·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 실험을 통해 삶의 변화가 만들어낸 감각적 전환을 담아낸다. 경기문화재단의 ‘생애 첫 지원’ 선정 이후 마련된 전시이기도 하다.

associate_pic
밸런스 게임(Balance Game), 2024 손지 5배접에 분채와 석채, 오일 드로잉, 비단에 자수 콜라주, 64×64cm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의 출발점은 한 산책길에서 마주한 까치의 푸른 날갯짓이었다. 어둠 속에서 번지던 미세한 스펙트럼은 작가에게 정체성과 현실, 예술 형식의 경계가 고정된 선(線)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검은 털로만 보이던 까치의 날개 속에 숨어 있던 푸른빛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구분선 역시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는 자각이었다. 고아빈은 이 순간을 시각적·조형적 탐구로 확장하며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 '아이보개 Blues'를 완성했다.

'아이보개 Blues'는 회화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구조가 특징이다. 그림자와 그림, 평면과 장황, 실재와 상징이 한 화면에서 뒤섞이며 확장되는 ‘경계의 감각’을 드러낸다. 작가는 “경계는 명확한 경계선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키며 확장하는 생성의 자리”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작품 '밸런스 게임'은 전통 회화·드로잉·자수·공예 기법을 하나의 화면에 병치해 장르 간 충돌이 만들어내는 균형을 실험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시도한 오일 트랜스퍼(oil transfer drawing)는 드로잉의 우연성과 회화의 밀도를 묶어내며 완결성과 미완성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육아 경험은 전시의 정서적 근간을 이룬다. 'mama Maria' 연작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모티프를 평범한 일상의 알루미늄 박 위에 올려 신성함과 현실의 경계를 지운다. 금박 대신 알루미늄을 택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성모의 초월적 이미지보다, 아이를 돌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들이 내게는 더 진짜 성화 같았다”고 설명한다.

associate_pic
가족의 탄생(Becoming Family), 2025 손지 5배접에 분채와 석채, 토채, 미디움젤, 70×55cm *재판매 및 DB 금지


'가족의 탄생'에서는 육중한 돌을 떠받치는 열매들이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지만, 작가에게 가족은 바로 그런 경험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가능해지는 힘”을 시각적 은유로 표현한 작품이다. 돌과 열매의 무게가 서로를 지탱하는 장면은 삶의 균형과 관계의 힘을 담담하게 환기한다.

'정중동·동중정', '낮과 밤' 등에서는 동양적 시간 개념이 회화와 공예적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해와 달, 실재와 환영, 움직임과 고요가 화면 안에서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 그려진다.

associate_pic
동중정(動中靜), 2025 손지 5배접에 분채와 석채, 90.9×72.7cm *재판매 및 DB 금지


전체적으로 이번 전시 ‘아이보개 BLUE(S)’는 전통과 현대, 회화와 공예, 성스러움과 일상, 현실과 상징처럼 서로 다른 세계가 맞닿는 ‘경계의 자리’를 탐색한다.

고아빈은 이번 작업을 “경계를 넘어서려 하기보다, 그 사이에 생겨나는 틈과 여백이 어떤 새로운 감각을 만드는지 주목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전시와는 주제도 조형적 표현도 크게 달라졌다”며 “이전에는 욕망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의 관계에 집중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 말했다.


associate_pic
가장 최근의 여자(The Most Recent Women), 2025 장지에 분채와 석채, 89.7×66.7cm *재판매 및 DB 금지


   
고아빈은 2006년 고려대학교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동양화 석사(2014) 및 미술학 박사(2023)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갤러리 킹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가람미술관, 목인갤러리, 갤러리 도스, 갤러리 이마주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단원미술제 한국화 부문 우수상(2013)을 수상했다. 목인박물관·양평군립미술관·자하미술관·정부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또한 인도 ICA 갤러리, 일본 동경예대 등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치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보기

거제 청마갤러리 기획전, '청마가 받은 편지, 詩로 빛나다' 개최

‘소녀’ 너머 감각의 폭발…아야코 록카쿠, 토탈미술관 첫 대규모 전시

빛의 반사 ‘영광 속의 평온’…금산갤러리, 장인희 개인전

백남준에서 무라카미까지…‘1945년 이후 한·일 미술’ 日서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