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칼로 그린 꽃’…갤러리508, 이준호 개인전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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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호 Flower-7 91 x 72.8cm(30호) 2024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단색 화면을 가르는 칼날의 결은 고요하지만 강렬하다. 긁어낸 자리에 새겨진 수만 갈래의 선은 침묵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일으키고, 절제된 색채 속에서 폭발 직전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준호는 지난 20여 년간 화면을 칼로 긁어내는 역행적 회화 방식을 중심 언어로 삼아왔다. 1998년 목원대 미술교육과, 동대학 산업정보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초기에는 칼로 찍어낸 듯한 붉은 산의 강렬한 색채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회색·청색·흑색으로 확장된 다층적 색면을 통해 자연의 리듬과 내면의 질서를 탐구해왔다.
그는 산수화가 두산 정술원(1885~1955)의 외손자로, 전통 회화의 미의식을 이어받았다. 정술원은 절지(折枝), 영모, 화훼, 인물 등 다양한 화목을 아우르며 특히 산수화에 탁월했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조형적 탐구가 ‘산’에서 ‘꽃’이라는 생명의 형상으로 이동한 지점을 보여준다. 화면을 덧칠하지 않은 채 수만 번의 칼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상처와 치유, 절제와 폭발, 생성과 소멸의 에너지가 꽃의 형태로 응축된다. 잘려나간 칼날의 흔적은 꽃잎의 결이 되고, 긁혀 드러난 단면들은 한 송이 꽃의 중심으로 모여 생명성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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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호 Flower-18 145.5 x 112cm(80호) 2025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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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호, Flower-13 65.1 x 53cm(15호) 2025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가에게 꽃은 장식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수만 번의 칼질을 통해 상처의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는 은유를 화면 전면에 새겼다.
단색의 화면에서 더욱 선명해진 칼질의 결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드러낸다. 칼은 파괴가 아닌 생성의 도구로 전환되며, 그의 회화는 덧입힘이 아니라 ‘깎아내림’으로 완성되는 역설적 조형의 기록이 된다.
이번 전시는 현대 산수에서 생명 이미지로 확장된 이준호의 회화적 사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한겨울 차가운 칼바람을 이겨내고 봄날 꽃봉오리를 피워낸 날, 수만 번의 칼질도 꽃이 되었다.”
전시는 2026년 1월 26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